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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이야기/나머지

코이케 카즈오(小池一夫)의 캐릭터 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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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캐릭터 원론

캐릭터 원론은 일본의 만화 원작자(스토리 작가), 소설가인 코이케 카즈오가 주창한 것으로, '만화=캐릭터'가 공리이다.


01 - 1. 캐릭터의 정의-캐릭터(Character)란 무엇인가. 

캐릭터는 등장인물이 아니다.

영어에서 캐릭터는 성격, 특징짓다, 정리하다, 구분 짓다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Thomas Aquinas characterised the Plato's theory into theology라는 문장은 [토마스 아퀴나스는 플라톤의 이론을 신학으로 특징지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캐릭터란, 단순히 "작품에 등장해서, 작품의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사람들"로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개성, 특징짓다, 구분짓다, 다른 것과 달리 툭 튀어나와 눈에 걸린다] 라는 의미대로, 다른 것과 구분될 수 있도록 독립적이고 따로 덩어리져 있어 구분할 수 있는 무언가이다.

캐릭터는 다른 이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캐릭터는 개성이자, 온리 원 포인트, 다른 사람과는 유일하며 차별화되는 특징이다. 

심리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게슈탈트를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게슈탈트는 전체라는 의미를 지니는 독일어로, 배경과 배경 위에 놓인 전경이 서로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의미를 지닌 독립된 의미단위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우리의 인지도 게슈탈트 단위로 이루어진다. 우리가 멜로디를 이루는 악기가 바뀌어도 동일한 멜로디로 인식하는 것도, 다른 폰트로 써진 글자가 서로 같다고 인식하는 것도 우리의 게슈탈트 능력 때문이다.

게슈탈트는 곧 캐릭터다. 캐릭터는 통일성, 개성, 핵심특질, 배경 등 상호작용할 다른 캐릭터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두 소설가가 같은 소재와 같은 플롯으로 글을 썼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두 소설가를 구분하는 것은 무엇인가? 문장, 표현, 전개 방식 등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틀어서 문체라고 한다. 그렇기에 문체는 캐릭터이다. 

비슷하게, 어떤 작가 만의 특징적인 세계관이 반복해서 나오거나, 그런 세계관을 구축하는 특징이 있다면 그 또한 캐릭터이다. 특정한 작가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두드러진다면 세계관 자체도 캐릭터고, 그런 세계관을 만드는 능력도 작가의 캐릭터다. 



01 - 2. 캐릭터 세우기

코이케 카즈오는 이렇게 말했다. 

"캐릭터는 남이 세워준다."

코이케 카즈오의 제자이자, 바키 시리즈의 작가 이타가키 케이스케를 예로 들면, 그가 만들어 내는 인물들은 캐릭터가 강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이를 위해 등장인물에게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ㅇㅇ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어 개성을 살리고, 이를 알리기 위해 그와 관련된 과거를 가진 인물이 그에 대한 이야기나 소문을 충분히 이야기하여, 독자들에게 등장인물의 인상을 각인시킨다. (캐릭터를 세운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방법 중 기-승-전-결로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본래는 한시에서 유래한 것인데, 이 중 기가, 세울 기, 일어설 기를 뜻하는 起이다.

그래서 코이케 카즈오는 그가 세상에 알린 "캐릭터를 세운다"는 표현을 사람들이 보통 "キャラを立てる(캬라 오 타테루, 캐릭터를 세운다)", 혹은 "キャラが立つ(캬라 가 타츠, 캐릭터가 섰다)" 라고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立つ라는 동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선다는 뉘양스가 있기 때문이다.

코이케 카즈오는 승적을 가지고 있는 승려이기도 하여, 대승불교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캐릭터는 자신이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세워주는 것, 주변과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불교의 연기설(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다)과 게슈탈트의 정의(전경과 배경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밀접한 상호작용을 나누는 관계)와도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캐릭터가 선다, 캐릭터를 세운다는 표현을 세울 기(起)를 사용하여 "キャラを起てる" 라고 표현한다. 즉, 기-승-전-결의 기에 들어갈 내용은 캐릭터를 세우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도입부이고, 이 기(起)에 해당하는 부분일까? 

캐릭터가 완전히 서는 부분까지이다. 도입부에서 허락한 시간 내에 캐릭터가 서지 않으면, 이야기는 실패한 것이다. 만화와 같은 경우, 32페이지 중 7페이지 이내에 중요 캐릭터의 소개, 기능, 특기, 성격, 생김새 등등이 각인되어야 한다. 

영화는 움직임과 배우가 있고, 애니메이션은 움직임이 있다. 만화는 그림이 있다. 하지만 소설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첫 문장에서 이미 이루어져야 할 일은 아래의 세 가지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은 되어야 한다. 


1) 작가의 캐릭터를 느끼게 하거나

(=작가성. 오리지널리티로서의 예술성을 판단하는 기준 중 하나)



2) 문장의 캐릭터를 느끼게 하거나

(=문체. 작가성과 마찬가지이나, 독자로 하여금 글을 이해하는 통로를 구축하는 역할도 함.)



3) 작품 내의 캐릭터를 느끼게 하거나

(=등장인물이나 이야기의 중요한 요소. 독자가 작품 세계에 감정이입하게 해 내용에서 리얼리티를 느끼게 한다.)



예를 들어 서두에서 부터 날씨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많은 작가들이 삼가라고 지적한다. (그 중에는 커트 보니것 주니어, 엘모어 레너드 같은 거장이 끼어있다.) 드물기는 해도 만일 작품 내에서 자연환경이 사실상 주인공이고, 이야기가 자연환경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라면, 자연환경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도 될 것이다. 혹은 역사적으로 현대가 아닌 다른 시공간을 다루는 경우에도 시도할 수 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인물이 자연환경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행동으로 보여주거나, 인물의 시점에서 주변 풍경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세우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헤밍웨이의 특기였다. 일인칭 화자의 캐릭터를 세우기 위해 주변 풍경을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인물이 자기 맘대로 "나는 나이프의 달인이다. 나는 킬러다."라고 하거나, 나레이션의 방식으로 "최민혁은 천상인이었다. 최민혁은 구세주다." 하고 알려주는 방식은 캐릭터를 세우기 곤란하다. 매우 곤란하다.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여 주지 않을 것이다.

코이케 카즈오의 제자 중 호리이 유지라는 사람이 있다. 일본식 롤플레잉 게임의 시조이자 최고봉인 드래곤 퀘스트를 만든 사람으로, 그 작품 내에서 용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과 플레이어가 감정이입을 하기 용이하기 하기 위해서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역시 용자님이야!" 하고 이야기를 해주거나, 용자와 대립하는 마왕이 나타나는 식으로 주변부를 통해 용자의 존재가 나타나게 한가. 이처럼,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이 있을 때, 그 캐릭터들의 존재는 서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한다.



01 - 3. 정리

1) 기승전결의 기는 캐릭터 세우기의 기
2) 캐릭터는 자기 혼자서 세우지 못한다.
3) 캐릭터는 단순히 인물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4) 캐릭터란, 온리 원 속성, 다른 것과 구분짓는 특질이다.


02. 캐릭터 신론


02 - 1. 원론에 추가된 신론

코이케 카즈오(77세)는 하츠네 미쿠, 동방 프로젝트,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 등에 감명을 받을 정도로 신세대의 정보 흡수에 뒤쳐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트위터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하츠네 미쿠나 동방 프로젝트처럼 유저가 직접 캐릭터를 이용하여 2차 창작을 하는 것이 자극을 받아, 원론에 이어 캐릭터 신론을 추가한다. 그 신론이란 다음과 같은 조건 하에 만들어졌다.


1. 기존과 달리, 인터넷 상의 캐릭터는 스토리나 배경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각적으로 달라야 한다. 시각정보를 통해 잠재적으로 캐릭터의 정보를 전달한다.



2. 캐릭터를 세우기 전에 먼저 템플릿(유형)을 정한다. 되도록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템플릿은 단순히 외형이나 직업, 속성에서 성격, 관계 등 다양하게 나눌 수 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한 눈에 봐서 이해가 가는 게슈탈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템플릿을 이것저것 붙이면 인상이 약해지므로 주의할 것.


예시)
무녀, 뱀파이어, 마법사, 소환술사, 검사...
에니어그램 1-9번.
츤데레, 쿨데레, 얀데레, 쿨뷰티...
누님, 로리, 여동생...



3. 템플릿을 정했다면, "말도 못하게 A가 B한 C", "D인데 E한 F"의 식으로 온리 원 포인트를 붙인다. 온리 원 속성은 아이템이어도 좋고, 모순되는 걸 붙여도 좋으나, 그 속성으로 모든 것이 하나로 딱 정리될 만큼 강력한 것이어야 한다. 되도록이면 츳코미를 넣고 싶을 만큼 과장해도 좋다. 


예시 : 

하츠네 미쿠 - 트윈테일이 발목까지 내려온다. 
하쿠레이 레이무 - 어깨 등등에 슬릿이 들어가 있다. 


4. 온리 원 속성으로 정리된 게슈탈트에 잠재적, 혹은 명시적 디테일을 충분히 채워넣는다. 이 과정을 통해 캐릭터가 서게 된다.


직접 만들어보자. 

"츤데레 + 아이돌 + 뱀파이어"라는 전형적인 성격을 섞은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걸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뱀파이어라는 속성을 비틀어, 붉은 색을 싫어하여 피도 마시지 않고, 언제나 우유를 마신다. 아이돌이 되는 이유는 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처럼 전혀 다르거나 모순적인 요소를 합쳐서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인상이 분산되지 않고, 딱 하나로 정리된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늑대인간이지만 다른 늑대인간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늑대인간이라는 설정은 그대로 둔 채, [힘이 약해서, 보름달이 떠도 송곳니가 조금 뾰죽해지고, 머리털 숱이랑 '거기' 털 숱이 조금 늘어날 뿐이고, 사람들과 함께 다니길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 쇼타 미소년. 직업은 가수. 목청이 좋으니까.]과 같이 보통 늑대인간과는 전혀 다른 요소를 하나로 합쳐주는 것도 방법이다.

여기에 "저, 오늘 보름이라, 수영복 촬영은 조금 힘들 것 같.... 으으... 아니에요." 라는 대사를 말하도록 하면 더욱 좋다.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움직인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기 때문이다.


위와 같이 캐릭터의 인상과 성격이 잡혔다면, 잠재적인 디테일을 마구 넣는 방식으로 디테일을 살린다. 늑대인간 소년의 경우, 종은 무슨 종이고, 주로 이런 습성이 있는 늑대의 습관 때문에 생긴 습관은 이런 것이라는 디테일을 넣어줄 수 있다. 

예를 들면, 음식을 먹지 않고 토해 배 곯는 동료를 먹이는 늑대인간의 특성을 생각한 뒤, [항상 먹을 걸 싸들고 다니면서 주변 사람에게 먹인다]는 디테일을 만들면 된다. 여기에 [단, 동물이 죽는 건 마음이 아프니 채식]이라는 디테일을 넣으면, 더욱 캐릭터가 강조된다. 

이와 같이 캐릭터를 잡으면 관련된 에피소드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반대로 세계관이라는 캐릭터를 먼저 잡고 이에 해당하는 각 속성을 캐릭터 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으로 유명한 사람은 토미노 요시유키(기동전사 건담의 감독)이다. 그는 언제나 작품을 위한 세밀하고 현실적인 '세계관'을 캐릭터화 하고, 주제와 세계관의 요소요소를 캐릭터 화 하여 갈등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세계관을 설명하는 수법을 취하고 있다.

현대에 이 방식으로 알려진 인물은 우로부치 겐으로, 코이케 카즈오는 자신의 신론과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작품을 만드는 우로부치 겐과 그가 시나리오를 맡은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와 대담을 하기도 했다. 그 대담에서 3화에 임팩트를 준다는 말이 나오는 데, 이는 만화와 달리 움직임과 소리가 있는 애니메이션에서는 곧바로 캐릭터를 세우기 보다, 캐릭터를 세울 것이라 기대하는 관객을 배반하면서 이야기 전체의 캐릭터를 먼저 세우고, 3화에서 임팩트 있는 사건으로 캐릭터를 세우는 방식을 취한 것으로, 기본 원리는 같다.

위의 대담에서 우로부치는 캐릭터 신론을 읽었으며, 책에서 말하는 '캐릭터를 세우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캐릭터 싱킹을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무의식중에 했으며, 불우한 어린 시절 캐릭터 싱킹으로 나치스의 범죄자 같은 악한 사람에게 공감하고 이해를 해 버려서, 자신이 악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창작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현재도 의도적으로 캐릭터 싱킹을 곧바로 하는 것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계관과 플롯을 먼저 짜는 우회로를 통해 캐릭터를 세운다고 한다.


02 - 2. 이야기

인물 간의 상호작용과 그 과정이 스토리다.

상호작용할 상대가 없으면 캐릭터가 서지 않으며, 마찰도 없고, 진행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보조하는 인물이 없으면 이야기와 스토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인공과 대립되는 적대자, 혹은 상호작용할 상대를 '세워야' 한다. 이 과정이 없으면 주인공도 상대도 '서지 않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요소로, 이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조역, 트릭스터를 만들어야 한다. 일본어로는 引き回し, 끌고 돌아다니는 이라고 부르며, 극중 인물이나 상황을 쥐고 흔드는 인물을 만든다. 

트릭스터는 사건의 의뢰인일 수도 있고, 개그나 사고를 치고 다니는 코믹 릴리프의 어설픈 인간일 수도 있으며, 마법 소녀의 마스코트 캐릭터일 수도 있고, 이중인격인 주인공 자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주인공이 아닌 다른 캐릭터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키로 치면 한마 유지로, 시구루이로 치면 이와모토 코간이 그 예시이다. 

적어도 이 세 축은 이야기의 도입부에 등장해야 한다. 물론 특정한 장르의 소설이거나 다른 주제의식이 있다면 그것도 캐릭터 화 하여 등장시켜야 하지만 등장인물로서의 캐릭터 없이는 오직 문체의 캐릭터 만으로 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카피라이트에 제 이름도 올라가긴 했지만, 사실 제가 한 건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손지상 작가님의 공이며, 저는 손지상 작가님이 채팅방에서 제게 가르쳐주신 걸 정리했을 뿐입니다. 정리 후, 메일 보내서 내용 검수까지 손지상 작가님이 하셨군요. 제가 진짜로 제 이름을 저기에 올려도 될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이 "캐릭터 신론"이 여러분들에게(특히 창작자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였으면 좋겠습니다.